디스케이프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편집 김예진
자료제공 디노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땅을 긋고 하늘을 재고 있다. 땅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선과 형태다. 건물이 선택한 색감 역시 주어진 땅을 배려하긴 마찬가지다.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메마른 땅의 이미지가 강렬한 장소에, 그 경험과 기억이 건축의 형태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색으로도 치환되고 있다. 짙고 두꺼운 적색은 태양빛을 가장 아름답게 받으리라 기대하게 되는 색감이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각적 경험과 영감으로 오묘함을 선사하고 있다. 수 공간 역시 땅에 내리쬐는 태양을 크게 의식하는 영역이다. 물은 태양빛과 하늘의 빛깔을 흡착하기도 하고 빛의 반사를 극대화하기도 하며 반응하고 있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기찻길이 있는 자리다. 그 한가운데 붉은색보다 더 붉어 보이는 공간은 딸에게 꿈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카페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홀로 그림 공부를 하는 동안 겪은 외로움의 감정을 그림으로 다스렸다는 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결과물이다. ‘무릉도원’으로 이름 붙여진 딸의 그림이 모티프가 되고 건축주의 바람이 보태져 꿈같은 공간이 현실로 옮겨진 작업이다.
내부로 들어오는 강렬한 빛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대부분의 창은 ‘띠 창’ 형식으로 최소화되어 있다. 특히 벽체의 하단부만 열어 놓고 있는 비교적 큰 창은 의자에 앉은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주변에 펼쳐져 있는 자연을 일종의 작품으로 연출해 내는 감동을 준다. 완전히 열려 있는 무방비 상태와 달리 공간 안에 짜임새 있고도 감각적인 긴장감을 흘려보낸다. 내부로 들어서는 입구에 여러 개의 벽체가 세워져 있는 것에서도, 몸에 힘을 실어 밀어야 하는 크고 무거운 문으로 첫인상이 새겨지는 것에서도 모두 동일한 긴장감이 전해진다.
직선과 직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천장에는 곡선으로 휘어져 흐르는 오브제가 유연하고도 부드럽게 부유하고 있다. 건축주의 그림과 딸의 그림 ‘무릉도원’의 실루엣에서 그 형태를 가지고 온 것이다. 집중 조명된 오브제는 천장 표면에 또 하나의 자신을 묽은 농도로 그려내고 있다. 오브제와 그 그림자가 서로 중복되면서 곡선의 입체감이 극적으로 표현되는 모습 그 자체가 또 다른 작품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 여타 각각의 오브제에 대해서도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방향에 창을 위치시켜 놓고 있어서, 정지된 예술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감각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공간의 일부로서 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땅의 고유성과 태양빛은 2층 공간에서 더욱 예술적으로 다가온다. 천장에 나 있는 원형 구멍은 빛이 타고 들어오는 영역으로 공간이 호흡하는 지점처럼 느껴진다. 그곳을 통해 들어온 빛은 시간을 따라 움직이며 지구의 공전을 통한 태양의 이동 궤적을 고스란히 묘사한다. 자연의 살아 있는 그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또 사실적으로 재현시켜 준다.
작품명: 디스케이프 / 위치: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 123-4 외 1필지 / 설계: 디노바 / 건축주: 디스케이프 / 용도: 제2종 근린생활시설, 카페 / 대지면적: 1,260m² / 연면적: 481.345m² / 건폐율: 25.30% / 용적률: 38.20% / 규모: 지상 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 완공: 2021.3. / 사진: 홍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