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게 주택은 박물관이나 청사 같은 건축물과는 다르다. 정치나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자유를 허용하는 작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주택 작품들을 조명하는 일은 그간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여느 대형 건축 사업에 밀려나면서 그 기회는 계속 사라져갔다.
건축가 서재원은 그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자 두 팔 걷고 나섰다. 1960~1970년대 우리 기억 속에서 잃어버리게 된 여덟 개의 한국 주택을 발굴하고 그 건물들에 녹아있는 건축가의 실험과 의도를 추론한 책,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먼저 그는 서문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건축가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 고뇌가 집약적으로 투영된 대상으로서 주택의 중요성에 대해 밝히며, 8인의 건축가와 주택 작업들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의뢰인의 요구 사항이 있고 지켜야 할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요구 또한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목사와 목수 사이에서, 기능과 형태 사이에서, 그리고 구상과 구축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중간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뇌의 흔적은 고스란히 도면과 건물에 남는다. 따라서 건축가의 주택 작업은 여타의 다른 건물보다 건축가의 진솔한 고민을 농밀하게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된다.”
저자는 과거 건축 잡지에 게재되었던 주택 중 여덟 개 프로젝트를 선별한 뒤, 지면의 자료를 근거로 도면, 모형, 렌더링 등을 직접 다시 제작한다. ‘내가 건축가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어떤 부분을 가장 고민했을까’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건축가의 의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추론해 나간다.
안병의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계획안’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일본 건축가 가즈오 시노하라의 엄브렐라 하우스와 비교를 통해, 우산이란 같은 참조 대상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다른 해석과 태도를 드러낸다.
유걸의 초기 작인 ‘강씨댁’에서는 루이스 칸의 영향을 언급하며, 기하학의 이성적 엄밀함과 감성적 공간을 통합하려는 자족적 시스템을 통해 콘텍스트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조창걸의 ‘건축가 정(丁)씨댁’은 조형 의지와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태가 위트와 모순으로 드러났음을 짚는 한편, 정길협의 ‘C씨 주택 계획안’에서는 자기만의 건축 언어를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밀했던 조형 실험을 발견한다.
김석재가 전통 요소를 차용해 한국성을 드 러낸 작업인 ‘박대인의 집’은 건축가와 의뢰인의 입장 차이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한국성 담론에 주목하게 한다.
공일곤의 ‘OH씨댁’은 현실(삶)과 이상(작품 의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건축가의 자아성찰적 태도가 우유부단한 결과로 귀결된 집으로, 건축가의 숙명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하는 작업이다.
김원의 ‘봉원동 K씨댁’은 설계라는 행위의 근원적 본질을 묻고 있는 건축가의 종교적 태도가 잘 드러난 집으로, 우리 시대 엘리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조성렬의 ‘한남동 송씨댁’은 조형 의지가 기능과 공간을 압도한 작업으로, 형태와 기능 사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전략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숭실대학교 최원준 교수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그는 저자의 작업들을 두고 ‘오늘날 우리 건축계에서 사전 정보 없이 건물의 모습만으로 그 건축가를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라며, “한국 현대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형식주의 건축의 계보를 잇는 그에게 선배 건축가들의 주택은 분명 훌륭한 역사적 참조체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전한다.
한국 근현대 건축사의 빈칸을 채우려는 저자의 의미 있는 시도들과 함께, 당대 건축가들이 마주했던 고민과 도전과 한계를 느껴보면 어떨까. 한국성, 주어진 조건에 대한 극복, 조형성 등, 지금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키워드들은, 오늘날의 건축을 바라보는 데에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